박재순 교수님 평 - 제3장 소 제목 "교육기관과 방법"
3장 교육기관과 교육방법
4) 교육기관
도산의 교육정신과 이념이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의 정신과 이념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지만 오산학교가 대성학교보다 먼저 설립되었다. 신민회의 평안북도 책임자였던 남강은 사재를 털어서 1907년 7월에 오산소학교 12월에 오산중학교를 그의 고향 오산에 세웠다. 남강이 세운 오산중학교는 7명으로 개교하였으나 다음 해에는 오산중학교에 신입생이 많이 몰려들었다. 도산은 여러 유지들과 인물들을 조직하여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서 1908년 9월에 90명의 신입생으로 개교하였다. 대성학교가 규모도 크고 영향력이 컸다고 생각된다. 남강은 한국에 남아서 어려운 가운데 오산학교를 유지해갔으나 도산은 1910년 4월 망명함으로써 1912년에 대성학교는 폐교되었다. 교육기관 흥사단의 특별함 흥사단은 철저한 민주정신과 높은 도덕정신을 바탕으로 인간의 덕력, 체력, 지력을 기르기 위해 세워진 전인교육기관이다. 흥사단은 인간을 생명과 정신의 주체로 보고 삶과 인격의 개조를 추구했을 뿐 아니라 역사와 사회(국가)의 주인과 주체로 보고 역사와 사회의 개혁과 창조를 지향하였다. 흥사단은 현대적이면서 주체적이고 전인적인 교육을 추구하는 교육기관이다. 서양의 고대 그리스철학과 근현대철학에서는 인간을 이성의 관점에서 봄으로써 편협한 인간관과 교육관에 이르렀다. 플라톤의 아카데미 정문에는 “수학(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함으로써 수학적 이성을 강조했다. 그리스어 idea(이데아), theory(이론)는 ‘보다’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며 순수한 수학적 이성으로 본 것을 뜻한다. 이런 철학에는 인간의 초월적 영성은 배제되고 이성이 욕망과 감정을 지배함으로 감성(체력), 지성(지력), 영성(덕력)을 통합하는 전인교육은 불가능하다. 플라톤의 ‘국가’는 정복과 침략의 전쟁, 노예제사회에 대한 반성이 없는 전체주의 독재국가다. 서양의 근현대철학은 중세의 기독교 지배에서 벗어나 수학적 자연과학적 사고를 극단적으로 강조했다. 수학과 자연과학의 연구방법에 기초를 둔 학문연구와 교육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서양의 대학은 역사, 사회, 심리, 미학, 철학, 종교까지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고 가르침으로써 전인교육(인성교육)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연구 교육체계는 1~2차 세계대전, 독일의 파시즘적 군사 국가를 방지하지 못했다. 이러한 연구 교육체계를 충실히 수입한 한국의 대학과 중고등학교에서는 현실적으로 전인교육(인성교육)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몇 해 전에 한국에서는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하여 인성교육을 의무적으로 실행하도록 했으나 현재 인성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수학과 자연과학의 방법론에 기초한 교육은 주입식 지식교육에 머물기 쉽고 몸, 맘, 얼을 살리는 전인교육이 되기 어렵다. 흥사단은 일제의 군국주의적 전체주의를 극복하고 치유하여 평화롭고 정의로운 민주국가를 세우려고 하였다. 흥사단은 민주적이고 과학(합리)적이면서 높은 영적 도덕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위대하다. 몸의 감성, 기쁨과 사랑의 감정, 이성적 관찰과 연구, 자기를 초월하는 희생과 대공(大公)의 높은 영적 도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흥사단의 교육은 통합적 전인적이면서 현대적이고 심오하다. 이기심과 이타심, 공과사, 나와 남을 함께 살리고 존중하고 결합하고 통합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고 이상적이다. 흥사단의 교육은 몸, 맘, 얼을 살리는 전인교육, 생활교육이다. 5) 교육방법 동맹수련: 단우들이 권위 있는 지도자의 일방적 지도에 의존하기보다는 서로 주체로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서로 이끌고 따르면서 함께 수련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다. 동양의 수양법이 홀로 하는 것이면서 금지와 자제를 중심으로 소극적인 수양법이라면 흥사단의 수양법은 함께 집단으로 하는 공동체적 수양법이면서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수양법이다. 흥사단 단우의 수양은 과거의 잘못과 허물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개척적이고 모험적이며 용감한 실천을 추구하는 수양이다. 대화법: 도산의 대화법은 상대의 생각과 말을 경청하고 공감과 설득을 추구하는 민주적이고 공동체적 대화법이다. 이성의 힘을 강조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상대의 논리와 주장에서 허점을 간파하고 공격함으로써 상대의 무지와 거짓을 폭로하고 상대에게 진리를 깨우치는 공격적 대화법이다. 도산은 상대를 국가, 역사, 삶의 주인과 주체로 존중하고 섬기려 했기 때문에 상대를 받들어 섬기는 자세로 상대와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설득하여 스스로 깨닫게 하였다. 웅변(연설): 군주시대에는 명령과 지시가 있을 뿐 연설과 웅변이 필요하지 않았다. 민주시대에는 나라의 주인과 주체인 민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에 연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승만은 권위를 내세우며 꾸짖고 훈계하는 연설을 하고 글을 썼으나 도산은 겸허하게 설득하고 호소하는 자세로 연설을 하고 글을썼다. 도산의 연설이 큰 감동을 준 것은 논리와 이치가 정연하고 깊은 성찰과 높은 이념을 지녔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서 자기를 초월하고 개인의 이해관계와 감정을 넘어서서 청중의 몸과 맘과 얼을 주체와 전체
로서 존중하고 고양시켰기 때문이다. 생활 자체: 도산이 생활을 통해서 교육한 것은 민주적인 교육의 모범과 전형을 보인 것이다. “나를 따르라”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교육자, 지식이나 정보, 기술을 주입시키는 교육자는 생활의 모범을 보일 필요가 없다. 전인교육, 생활교육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 속에서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도산은 위대한 사상가, 위대한 조직가, 위대한 정치인, 위대한 도덕가, 위대한 교육자였다. 한 사람의 삶과 인격 속에 이처럼 많은 영역을 통합하고 완성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승훈은 사상과 철학에서는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고 유영모는 정치인도 활동·조직가도 되지 못했으며 함석헌도 조직력과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