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 순국 80주년 추모사 (윤병욱)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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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4 02:46
거수!
장리욱 저 "도산의 인격과 생애"를 동맹독서하고 있습니다. 다음 번은 제 3장 "스승 도산"
입니다. 교육을 전공하시고, 서울대 총장까지 지내신 분이라, 장리욱 단우의 "스승 도산"은 중요한 chapter이어서, 필요하면 여러번에 걸쳐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모두 미리 책을 읽어 주시고, 공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금번 도산 서거 80주기를 기하여, 윤병욱 전 이사장님이 대한인국민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였습니다. 윤병욱 단우님은 도산에 대한 책을 몇 권 쓰셨으며, 장리욱 총장님을 가장 많이 연구하신 분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첨부 파일에 추모사를 보내 드립니다.
윤창희, 흥사단 미주 위원장
도산 안창호 선생 순국 80주년 추모사
오늘 우리는 도산 선생의 순국 80 주년을 맞이하여 그분의
위대 하심이 우리와 함께, 또한 우리 후손들과 함께 계시고
우리 민족과 영원히 함께 하심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자리에 모였습니다.
비상한 시국에 비상한 지도자가 나온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도산에게서 찾을수 있습니다. 그는 백년만에 나타난 민족의 선각자 였습니다.
선생의 인격과 경륜,사상과 예지, 국민 양성과 국가 건설은
살아 계셨을 때도,세상을 떤나신 후에도 시대를 초월하여
민족과 세계가 그의 마음안에 있고 그의 본마음이 곧 우리요,
우리 조국이요, 우리 세계 였습니다.
그분을 뵙기 위하여 상하이로 유학까지 갔던 피천득은
내일생에 큰기대를 가졌던 경험에 환멸을 느끼지 않은 적이
처음으로 있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금강산을 처음 바라 보았을때요,
또 한번은 도산을 뵌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예리한 관찰력과 명철한 판단력,근엄하기에는 너무나 인자한
그의 인격은 위엄으로 나를 누르지 아니하고 친화와 정성으로
나를 품안에 안아 버렸다고 했습니다.
1938년 서재필은 추모사에서 그의 급작스럽고
비극적인 서거는 한국에 크나큰 손실 이었고 청년 학우회, 대성학교, 신민회, 상해 임시정부, 흥사단과 대한인국민회를 조직 활동하고 그분 만큼 독립에 대한 확신을 갖고 한국민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킨 민족의 지도자를 본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안도산이 링컨이 다스린 세상과 같은 기회를 가졌더라면 그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지도자로 알려졌을 것이라 했습니다.
지도자 사이에도 애정과 이해로 안창호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승만은 [도산 천고]라는 추모의 글을 남겼습니다.
부인과 자녀들은 하늘가에서 슬피울고/
친한 동지들은 먼 이국땅에서 놀라도다/
나라는 망하고 있어야 할 사람 또한 떠나니/
패강(대동강)과 더불어/
슬픈 울음을 참기 어렵도다/
일본 경찰이 소위 “민족 운동의 괴수 안창호” 의 말년 일거수일투족을 미행할때 아내에게 보내는 "나의 사랑 혜련에게” 편지속에서 내친구중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사람이 얼마입니까? 설혹 감옥에서 목숨을 마친다 하여도 한탄 할것이 없습니다. 나의 장래는 자연에 맡기고 지은죄를 참회하고 옥중에서라도 심신을 새로이 단련하며 화평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내가 옥에서 목숨을 마친다 하여도 놀라거나 슬퍼하지 마소서..라는 서한을 아내에게 보냅니다.
남편이 1938년 3월 8일 임종하기 이틀전 “병석에 누우신 어른전 상서” 라는 서한에서 "병이 그리 침중한 가운데 무슨 말씀으로 위로를 드려야할지 알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히 나으시기를 간곡히 기도 하나이다" 라는 편지를 받아보지 못하고 아내와 가족, 민족의 슬픔과 대한의 독립을 뒤로하고 파란많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마지막 편지속에 큰아들 필립이 치료비 100달러와 그리고 가족이 보낸 300달러 등 현시가로 1만 달러 가까이 되는 치료비는 받지도 못한채 미국으로 반송되었고, 이해련의 마지막 편지만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윤 병욱
Los Angeles, Califo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