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순 교수님의 동맹독서 평 - 도산사상
도산사상: 예수·플라톤·국가주의를 넘어선 안창호의 정신과 철학
근현대의 성격과 특징
도산 안창호는 한국의 근현대가 낳은 세계적 사상가다. 근현대의 성격과 특징을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민의 주체적 각성이다. 근현대에 이르러 비로소 역사와 사회의 주인으로서 민의 주체적 각성이 이루
어지고 민이 역사와 사회를 주체적으로 변혁시켜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와 중세
에는 민을 역사와 사회의 주체로 보는 관념이나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주체’(主體)라는 말도 없었다. 주
체(主體)란 말은 19세기 후반에 일본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중국에서 주체(主體)는 제왕의 몸을 나타내는
말일 뿐 역사와 사회를 움직이고 변혁하는 주체의 의미로 쓰이지 않았다. 오늘날 서양에서 주체를 나타내
는 말은 ‘subject’인데 이것은 ‘~아래 놓인’, ‘~아래 던져진’을 뜻하는 말이며 지배 권력에 예속된 신민(臣
民)이나 부하(部下)를 뜻하는 말이다. 서양에도 ‘민의 주체’를 나타내는 말은 없다. 동양과 서양에서 민의
주체적 각성과 의식은 근현대를 특징짓는 새로운 것이다. 둘째 근현대의 성격과 특징은 국가와 민족의 지
역과 경계를 넘어서 서로 다른 정신과 문화의 전통을 합류시키고 융합하면서 인류사회가 하나의 큰 세계
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민족과 국가의 구성원이고 주체로서 민은 세계적인 보편적 전망과 의식을 가
지고 세계인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 근현대에 이르러 민은 과학기술의 혁명과 이성적 과학적 사
고의 확립을 통해서 민은 운명론적 결정론적 사고와 미신적이고 비합리적인 사고를 벗어나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이성주의 철학은 과학적 합리적 사고에 이르렀으나
노예제 사회의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안창호는 한국의 근현대에서 사상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근현대의 이러한 성격과 특징을 가장 완전하게 실
현한 인물이다. 민을 역사와 사회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는 민중교육독립운동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민주정신과 원칙에 따라 말하고 행동했다는 점에서 그는 한국의 근현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한국인으로서 역사·문화적 주체의식을 가지고 살았지만 누구보다 깊고 온전하게 서양의 기독교정신,
민주정신, 과학사상을 체화하고 실천하였다. 한국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미국과 중국과 멕
시코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세계적인 전망과 의식을 가지고 세계인으로서 살았다. 한국과 동양의 역사와 문
화를 지키면서도 서양의 정신과 문화를 체화하고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삶과 사상은 동서의 정신문화
를 합류시키고 융합했다. 그는 동서의 정신과 문화를 가장 조화롭게 균형 있게 통합한 세계인이었다. 그는
또한 자연만물과 일에서 역사와 사회의 현실에서 그리고 삶과 정신과 도덕에서 원인과 결과의 작용과 관
계를 확신했고, 힘의 크기에 따라 일의 결과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언제나 그는 현실의 문제들을 과학적으
로 분석하고 진단하고 평가한 후에 적합한 대안을 연구하고 제시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그에게는 운명론과 결정론의 흔적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민이 역사와 사회
를 변혁하고 창조하는 주체임을 확신했고 그의 생각과 말, 삶과 행동은 민주정신에 사무쳤다. 세계적 경험
과 안목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는 누구보다 깊고 넓은 관점과 전망을 가지고 주어진 현실을 고민하고 미래
를 내다보며 대안을 모색했다. 그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신을 가지고 민주적인 자세와 태도를 지키면서
미래를 위해 깊고 크고 열린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었다.
안창호는 근현대의 정신을 온전히 구현한 사상가이고 활동가였다.
예수와 안창호의 같음과 다름
장리욱은 예수, 플라톤, 국가주의와 관련해서 도산사상을 말했다. 예수, 플라톤, 국가주의는 도산사상을 이
해하는데 소중한 실마리가 될 뿐 아니라 도산 안창호의 사상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준다. 먼저 예수
의 삶과 정신을 살펴보자. 세례자 요한과 관련된 예수의 이야기는 기독교 신앙·교리·신학에 의해 덧칠되고
포장된 예수상(像)을 벗겨내고 역사적 예수의 진상과 실상을 보게 한다.
예수와 도산은 삶의 정상에서 세상의 짐, 겨레의 짐을 지고 온갖 고통을 겪었다. 인류의 짐, 겨레의 짐을
지고 살았던 이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이들 속에 들어가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세상의 짐을 지
고 고통을 겪었던 예수와 도산의 삶은 세상의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인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다른
이야기는 구원자 예수의 역사적인 실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은 제자를 보
내어 예수에게 예수가 ‘오실 그이’(메시아, 구원자)인지 물었다. 예수는 자신이 오실 그이라고 말하는 대신
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가리키며 “너희가 보고 들은 대로 요한에게 가서 전하라.”고 대답하였다. 예수
는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다가 상처받고 병들고 낙심한 사람들을 고치고 힘을 주었다. 그리하여 보지 못
하는 사람은 보게 하고 듣지 못하던 사람은 듣게 하며 걷지 못하던 사람은 일어나 걷고 뛰게 하였다. 예수
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하였다. 그는
무거운 짐 지고 고통당하는 이들의 짐을 벗겨주고 무거운 짐을 지고 소외된 인간들의 친구가 되었다. 예수
는 무거운 짐을 지고 병들고 소외된 인간들의 짐을 벗겨주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그 짐을 함께 나누어지
고 삶의 기쁨과 사랑과 자유를 함께 누리려 했다.
도산이 한민족과 시대의 죄악과 불의의 짐을 지고 살면서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을
치유하고 일깨워서 바로 세우고 함께 일어나려고 했던 것은 예수의 삶과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도산
은 나라를 잃고 가난과 수치, 무지와 고통 속에 사는 민족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을
깨워 삶과 역사, 사회와 국가의 주체로 일으켰다. 도산을 만나 도산의 친구가 된 사람들은 삶과 역사, 국
가와 세상을 보는 눈을 얻고 남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귀를 가지고 자신의 뜻을 바로 말하는 입을 지니게
되었다. 도산은 그들을 홀로 서게 했고 그들과 함께 일어섰다. 도산은 가난하고 힘없는 동포들 속으로 들
어가 그들을 힘 있고 존중받는 인물들로 일으켜 세웠다. 생명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도산은 그 시대와 사
회가 요구하는 참된 인간으로서 참된 삶을 살았다. 예수와 도산의 이러한 삶은 예수와 도산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사회에서 참되게 살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요청되는 것이다. 도산은 독실한 기
독교인이었으나 그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전통적인 교인은 아니었다. 다석 유영모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현대적이고 주체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어서 그리스도록’으로 풀이하고 예수
의 삶과 정신을 이어서 그리스도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직분과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보았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과 뜻을 이어서 오늘 나의 삶을 바르게 살자는 것이다. 도산은 예수의
삶과 정신을 가지고 오늘 자신의 삶을 힘껏 바르게 살았다.
도산과 예수는 비슷하면서 다르다. 도산이 살았던 20세기의 시대와 사회가 예수가 살았던 2,000년 전의
시대와 사회보다 훨씬 깊고 높고 크다. 적어도 예수 시대에는 역사와 사회의 주체로서 민의 주체적 자각과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는 민중에게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가르쳤을 뿐 과학적으로 생각하
고 민주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법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신화적이고 모호한 의식
과 감정을 떨쳐 버리지 못한 것은 그 시대와 사회의 제약 때문이다. 도산의 삶과 가르침에는 신화적이고
모호한 의식과 감정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과학적이고 합리적 사고와 행동이 두드러지며 높은 도덕과 인
격의 이상과 목표가 확립되어 있고 민주정신과 실천이 사무쳐 있다. 도산의 시대는 인식론적으로나 정신적
으로 2,000년, 2,500년 전 기축시대의 성현들이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깊고 큰 시대다.
플라톤과 근현대 국가주의를 넘어서
플라톤의 국가이해와 도산의 국가이해는 어떻게 다른가?
플라톤은 서구 철학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다. 과정 철학자 화이트헤드(Whitehead)는 서구
철학사는 플라톤의 철학에 대한 주석일 뿐이라고 했다. 어떤 점에서 플라톤의 철학은 서구 철학사에서 그
처럼 중요한 위치에 있는가? 플라톤은 자연만물과 생명과 정신의 속에서 그리고 배후에서 수의 조화와 질
서, 아름다움과 신비를 보았던 피타고라스의 철학을 계승했다. 플라톤은 그가 세운 아카데미 정문에 “수학
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마라.”고 썼다. 그리스의 언어는 정서적이고 교감적인 한국어와는 대조적으로 매
우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다. 가장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것은 산술계산과 기하학의 세계다. 계산적이고 논리
적인 이성의 능력과 성질이 산술계산과 기하학의 세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성을 앞세웠던 그리스철학
자들은 수학적 이성을 바탕으로 철학을 확립했다. 이러한 이성이 보고 파악한 진리는 산술계산과 기하학에
서 드러나는 절대불변의 이념적 진리다. 그들이 추구한 이론(theoria) 이데아(idea)는 이성이 보고 파악한
수학적 이념이다. 이것은 생성소멸하지도 않고 변화와 향상이 없는 고정 불변한 이념이다. 이러한 이성적
진리는 사물과 생명을 분석하고 진단하여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지만 개조하거나 변화시키고 창조할 수
없다. 이러한 수학적 진리와 이념이 서구 철학사의 주류를 확고하게 지배했다. 특히 근현대 서구 철학은
수학과 자연과학에 확고하게 뿌리와 토대를 두고 있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치는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고
칸트는 자연과학의 지식과 진리를 철학적으로 확립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순수이성비판을 썼다. 분석철학자
러셀과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는 뛰어난 수학자였다. 프로이센의 교육장관 빌헬름 훔볼트(Wihelm
Humboldt)는 1809년 베를린에 수학과 자연과학에 토대를 두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대학을 세움으로써 세
계의 대학연구교육체계를 확립했다. 서구의 근현대 철학은 고대 그리스철학 이상으로 수학에 토대를 둔 철
학이었다.
플라톤의 국가이해는 도산의 국가이해와 비슷하면서 아주 다르다. 둘 다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의 수준에 따라 국가의 수준이 결정된다고 본다. 플라톤의 국가이해는 인간이해와 일치한다. 그에 따
르면 인간은 욕망과 감정과 이성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이성이 욕망과 감정을 통제하고 지배할 때 조화
롭고 온전한 인간으로 살 수 있다. 욕망에 대해서는 절제의 덕이 감정에 대해서는 용기의 덕이 이성에 대
해서는 지혜의 덕이 요구된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와 본성의 구조는 국가의 구조와 일치한다. 국가는 욕망
에 따라 움직이는 생산자계급(농민), 용기를 가지고 활동하는 수호자계급(군인), 지혜로 다스리는 통치자계
급(철인왕)의 세 계급으로 구성된다. 지혜로 다스리는 이성의 통치는 이성이 파악한 최고의 진리, 이론
(theoria), 최고의 선과 목적 이데아를 실현하려고 한다. 이성의 지배와 통제를 앞세움으로써 플라톤의 국
가는 철인 왕이 전적으로 지배하는 전체주의 독재 국가가 되었다. 이성의 완벽하고 철저한 지배를 실현하
기 위해서 플라톤은 생명의 주체와 전체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시(詩)와 웃음(기쁨)을 배제했다. 플라톤에
의해서 생명과 정신의 주체와 전체는 잘리고 깎였을 뿐 아니라 이성의 이론과 이념 속에 갇히게 되었다.
플라톤의 인간론과 국가론에서 가장 큰 문제는 ‘주체’의 개념과 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
과 감정은 이성의 통제 대상일 뿐이다. 욕망과 감정의 주체성과 전체성을 존중하고 실현하려는 생각이 없
다. 욕망과 감정은 문제꺼리이며, 처리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국가에서도 대다수를 이루는 생산자
들과 군인들은 통제와 지배의 대상일 뿐이며 그들을 생명과 정신의 주체와 전체로 존중하고 받드는 생각
이나 관점은 찾아볼 수 없다. 플라톤이 살던 시대는 노예제 시대였다. 그가 살던 도시국가 아테네는 자유
민보다 더 많은 노예들이 있었다. 플라톤은 이 많은 노예들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과 동정을 보이지 않았
다. 아테네의 자유 시민들은 노예들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 살았다.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는 노예들의 어깨에서 그 무거운 짐을 벗겨주거나 덜어주려는 생각을 플라톤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인간은 국가의 구성요소이고 기능일 뿐이다. 국가의 이념과 목적이 인간보다 위에 있었
다. 인간은 국가의 이념과 목적을 실현함으로써 비로소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을 인간본성의 최고단계로 보고 궁극적이고 신적인 것으로 파악한 고대 그리스철학의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생각한다. 산술계산과 기하학적 도형에서 드러나는 순수한 이성의 수학적 진리를 생명과 정
신의 궁극적인 최고 진리로 보았기 때문에 인간 생명의 주체와 전체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못하고 이성의
독재적 전체주의적 지배에 이른 것이다. 인간을 국가의 구성요소로 보고 국가의 이념과 목적을 실현하는
기능과 힘으로 파악한 플라톤의 국가이해는 인간의 주체와 전체를 억압하고 희생시키는 국가주의적 국가
이해의 전형이다.
이에 반해 도산은 인간이 몸(體), 맘(知性), 얼(德)을 가진 존재로 보고 몸의 체력, 맘의 지력, 얼의 덕력을
기르고 키우려 함으로써 몸, 맘, 얼을 생명과 정신의 주체와 전체로 존중하고 받들고 실현하려고 했다. 덕
력과 체력과 지력을 기름으로써 건전한 인격을 확립하고 건전한 인격을 확립함으로써 국가민족의 단결과
통일에 이르려고 했다. 사물과 생명과 정신의 인과관계와 작용을 중시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분석하
고 진단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려고 힘쓰면서도 도산은 과학적 합리적 사고 위에 책임적으로 결정하고 행동
하는 주체로서 인격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이성의 지배와 통제를 넘어서 민의 자유와 주체를 확립하려 했
다. 플라톤에게서 민은 국가의 구성요소와 기능일 뿐이지만 도산에게는 민이 국가의 주인이고 주권자다.
그에게 민은 국가를 구성하고 성립시키는 구성원이면서 국가의 최고 결정권자다. 도산은 과거에는 황제가
하나뿐이었지만 오늘에는 민이 황제라고 했다. 그에게는 민이 곧 나라였다. 국가의 주인과 주체인 민이 일
어서면 국가와 민족도 일어서는 것이고 민이 넘어지면 국가와 민족도 넘어지는 것이다. 민을 국가의 주인
과 주체로 본 도산에게는 민이 국가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민을 위해 있다. 민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자유롭고 평등하고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삶을 위해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근현대국가주의를 극복하고 청산하는 도산의 민주국가사상
도산의 국가이해는 한국민족에게서 나라와 주권을 빼앗은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심화되었다. 나라를 빼앗겨서 국토와 주권을 잃고 국민만 남았기 때문에 국민을 국가의 중심과 꼭대기, 주
인과 주체로 볼 수 있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있는 것은 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이후 민중교육독립운동을 일으킨 도산이 할 수 있는 것은 민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
으키는 일밖에 없었다. 민이 깨어 일어나면 나라를 되찾고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도산은 평
생 독립교육운동을 펼쳤다. 민중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려는 그의 뜨거운 민주정신과 열정이
불타올라서 온 국민이 일어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삼일독립운동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약소국들을 정복하여 식민지로 만든 근현대의 국가주의는 플라톤의 국가주의와 비교될 수 있다. 부국강병
을 추구한 강대국들의 국가주의 이념과 목적은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과 다른 민족들에 대한 우월감과 자
기 민족과 국가에 대한 열정과 감정에 기초해 있다. 이 점에서 근현대의 국가주의는 욕망과 감정을 이성으
로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했던 플라톤의 국가주의와는 상반된다. 근현대는 민의 주체적 자각과 해방이 이루
어지면서 몸의 해방이 이루어졌고, 몸의 해방과 함께 욕망과 감정의 해방과 분출이 이루어졌다. 물질적 부
와 군사력을 앞세운 근현대 국가주의는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과 충동, 국가와 민족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
로 움직였다. 욕망과 감정이 지배한 근현대 국가주의는 이성의 관조를 통해 파악된 이론과 이념(이데아)을
추구하고 실현하려 했던 플라톤의 국가와는 상반된다. 그러나 민을 국가의 구성요소와 기능으로 보는 점에
서는 플라톤의 국가이해와 근현대 국가주의가 일치한다. 둘 다 국가가 인간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았다. 인
간 국민은 국가의 이념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자원(노동력)과 도구(군사)로 동원되고 이용되었다. 민을
국가의 주인과 주체로 존중하지 않았으며 민은 국가의 주권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플라톤의 국가나 근현대의 국가주의 국가도 민을 국가의 요소와 기능으로 보고 민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
을 결정한다고 본 것은 도산의 국가이해와 일치한다. 그러나 플라톤이나 근현대의 국가주의와는 달리 도산
은 민을 국가의 중심과 꼭대기에 두고 민의 주체와 주권을 강조했다. 그에게는 민이 국가의 주체이고 실체
이며 근원이고 목적이었다. 민이 곧 국가였다. 그는 평생 민의 주체적 각성과 민족적 단결을 위해 생각하
고 말하고 행동했다. 한국근현대에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 가운데 민주정신과 실천의 일관성과 철저성에서
도산과 비교될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민을 주체적으로 각성시키고 각성된 민이 서로 주체로서 단결
된 조직을 형성하고 단결된 조직이 민족의 대동단결, 통일을 이룸으로써 민족의 통일된 힘으로 민족의 자
주독립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는 변함없는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헌신하고 노력하였다. 그는 몸(體), 맘(智),
얼(德)을 주체와 전체로 존중하고 온전히 실현하려고 했다. 그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삶의 기
쁨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고 이루고 나누고 베풀려고 하였다. 그는 지식과 이론보다 몸의 힘
체력을 앞세우고 덕력, 얼의 힘을 가장 높이 내세움으로써 플라톤의 이성주의적 국가이해를 넘어섰을 뿐
아니라 욕망과 감정을 앞세우고 조장한 근현대 국가주의의 폭력적 탐욕적 국가이해도 극복하였다. 도산은
참으로 자유와 평화, 민주와 정의의 삶을 실현하는 민주적 국가이해에 이르렀다.
도산의 사상은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제의 군사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따라서 도
산의 사상은 근현대국가주의의 이념과 사상을 극복하고 청산하여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국가를 세우는 사
상이고 철학이다. 한국민족은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으나 남과 북이 분단되고 남북 사이에 민족전쟁을 일으
켰다. 남북분단과 민족전쟁에서 권력욕과 국가체제에 대한 맹목적 애국심을 강화하는 국가주의가 더욱 강
화되었다. 이승만 권력과 맹목적 애국심에 기초한 자유당독재도, 부강한 국가를 추구한 박정희·전두환의
군사독재도 권력욕과 국가체제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애국심에 기초한 국가주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한
국근현대에서 도산은 가장 순수하고 철저한 민주정신과 실천의 전형을 보여준다. 근현대 국가주의를 극복
하고 민의 주권을 실현하는 민주국가를 실현하는 도산의 민주정신과 실천은 삼일혁명으로 이어지고 삼일
혁명은 4·19혁명, 70년대 민주화운동, 5·18민주항쟁, 6월 시민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