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독서] 제2장 인간에 대한 마음씨 (장리욱 저 “도산의 인격과 생애”)
장리욱은 도산의 일생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인간의 자유와 권위와 행복을 위해서
계획하고 노력하고 또 모든 희생을 달게 바친 것이 도산 생애의 전부다.” (P. 40) 도산을
평가한 말 중에도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이것이 바로 도산 사상이고 철학이다. 도산이
어찌 한민족, 배달 민족에게만 국한된 인물인가? 그는 벌써 1900 년도 초에, 세계 인류와
같이 호흡하고 있었다. 도산을 뉴욕에 내 놓아도, 프랑스 파리에 내 놓아도 부끄러움이
없다. 지금 도산은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서, 간디, 마틴 루터 킹과 같이 서 있다.
도산 안창호의 으뜸이라면 인간에 대한 마음씨일 것이다. 장리욱은 도산의 마음 씀씀이를
1) 주의 없는 인도주의, 2) 인간성 이해, 3) 인정에 감사, 4) 동정, 5) 인간의 의사 존중,
이렇게 5 가지 면에서 살펴 보았다.
장리욱은 도산을 톨스토이나 볼테르 같은 이론적인 인도주의자가 아니고, 링컨과 같이
생활 속에서 행동하는 인도주의자로 보았다. 간디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도산은 “사람과
또 사람이 관련된 일이라면 중시하고... 존중히 여기고... 모든 것을 희생해서 바쳤다.” 사람
냄새가 난다는 말이다. 주의 없는 인도주의라면, 어떤 이론이나 학설에 얽메이지 않고, 즉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포용했다라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도산의 삶은 전
생애를 걸쳐서 어떤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었다. 1917 년도에 볼세비키 혁명으로 성공한
공산주의에 치우치지도 않았고, 나라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당시에 유행한 수많은
사회주의 이론이나 혹은 자본주의 이론에도 치우치지 않았다.
도산과 같이 “사람을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성과 또 그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힘”을 갖게 된다는 장리욱의 글은 어떤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처지를 다 이해하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도산은 섬세한 사람이었고, 한 사람을 깊게
사귀어 그 사람의 인간성을 모두 이해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모든 인간은 한계를 갖고
태어나는 데, 이 한계성 때문에 독립운동도 불같이 타는 열정적인 운동만 가지고는 안되고,
장기적인 독립운동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도산은 항상 호소하였다. 그러기에 학생들
에게는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독립운동이요, 수입의 20 분의 1 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으로 바치는 것이 독립운동이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20 분의 1 등이 모여,
상해 임시정부와 대한인 국민회에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이러한 도산의 인간성 이해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독립운동 방략을 따랐던 것이다.
한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도산은 이론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었다. 도산의
동지애는 그 중에도 으뜸이었다. 도산은 동지들의 사랑에 항상 감격하였고, 할 수만 있으면,
동지들의 인정에 대하여 보답을 하였다. 추정 이갑은 자기 돈을 물쓰듯이 독립운동과
동지들을 위해 썼고, 도산은 추정의 우정에 보답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추정이 죽을 병에 걸려 도산이 그를 신한민보의 주필로, 미국에 초청하여 치료를 하고자
했을 때, 추정이 너무 아파서 뉴욕 Ellis Island 이민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다시
시베리아로 되돌아 간 일이 있었다. 흥사단은 추정 이갑이 Ellis Island 에 입국할 당시의
기록을 판독하여, 독립운동사 자료로 발표한 바 있다. 이 때, 추정은 자기가 차고 있던
금시계를 도산에게 주었고, 도산은 그 금시계를 아끼고 차고 있다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어느 동지에게 추정을 기념하여 잘 간직하라고 맡겼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이야기는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도산의 인정에 대한 감사와 동정은,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도산을 우리가 우러러 보는 것 중의 하나는,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여 이야기를 중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듣는 경청의 태도이다. 그런데, 이것이 듣는 척이 아니라, 진심어린
마음으로 듣는 것이라 장광설을 늘어 놓는 사람이 있을 적에는, 옆에 있는 동지들이 오히려
민망할 정도이었다. 도산 당시에 수많은 주의와 학설이 많아서, 모두 자기의 방법이 옳다고
할 적에, 도산은 큰 바다와 같이 모든 사람들의 말을 다 들었다. 장리욱이 옆에서 지켜볼
적에, 도산이 많은 애국지사들과 밤이 늦도록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를 존경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나온 것이었다. 지금같이 좌/우, 진보/보수로 두 쪽이 나버린
국민 정서에, 누가 도산과 같이 중심을 잡고 경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이 필요하다.
2018 년 3 월 11 일
윤창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