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독서] 제2장(2) 인간에 대한 마음씨
2장 인간에 대한 마음씨
도산은 지극한 정성과 헌신의 심정으로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돌보았다. 그는 병든 사람을 간호하고 보살피는 일에 혼신을 다하였고 이로써 병든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서로 믿고 따르는 동지가 되었다. 장리욱의 말대로 도산은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달게 희생했으나 ‘주의’를 내세우거나 이론과 학설에 매이지 않았으며 생활 속에서 행동하는 인도주의자였다.
여기서 ‘생활 속에서 행동하는 인도주의자’란 말이 중요하다. 도산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이성으로 헤아리고 생각해서 인도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다. 위대한 철학자나 사상가의 이론과 학설을 연구해서 인도주의자가 된 것도 아니다. 이성은 인간의 생명과 정신을 주체로서 깊이 보지 못하고 전체로서 통합적으로 보지 못한다. 이성은 언제나 개념과 논리를 통해서 분석하고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지 대상의 주체와 전체를 온전히 보지 못한다. 이성은 인식주체로서 인식대상을 대상화, 타자화 함으로써 인식대상의 주체를 보기 어렵다. 또 이성은 분석하고 쪼개서 보기 때문에 대상을 온전한 전체로서 통일적으로 보기 어렵다. 모든 이념과 이론은 생명과 정신의 주체와 전체를 나타내거나 실현하지 못한다. idea(이념)나 theory(이론)은 모두 ‘본다’는 말에서 나온 개념이고 ‘이성이 본 것’을 의미한다. 이성의 탐구에 의해서 결론에 이르면 이념이나 학설을 주장하게 된다. 이념이나 학설은 인간의 생명과 정신에 대해서 분석하고 이해하고 설명한 것일 뿐 생명과 정신 그 자체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어떤 이론과 학설을 가졌다고 해도 다른 인간을 깊이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삶을 올곧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산은 어떻게 생활 속에서 행동하는 인도주의자가 되었나? 도산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과 정신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탐구한 결과 인도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다. 이성의 탐구 이전에 도산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생명과 정신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존귀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존재인가를 스스로 느끼고 깨닫고 알고 체험했던 것이다.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이 아름답고 존귀하고 위대한 것을 깨닫고 알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높이 실현하고 완성하려 했으며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섬기는 일에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었다. 현대의 천문물리학은 우주의 역사가 인간의 몸에 새겨져 있음을 말해준다. 생명진화론은 인간의 몸과 맘속에 생명진화의 역사가 새겨져 있음을 밝혀준다. 인간은 잠시 살다가 죽는 존재이지만 인간의 생명과 정신 속에는 우주와 생명진화와 인류역사가 새겨져 있고 살아 있다. 도산은 자신의 삶과 정신 속에 한없는 깊이와 힘과 아름다움이 있음을 깨닫고 체득하고 실현한 분이다.
도산은 물질과 생명과 인간의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과학적 지성과 이론을 중요하게 사용했지만 지성과 이론의 한계에 머물지 않았다. 지성과 이론은 생명과 정신에 대해서 거리를 가진 것이며 2차적, 3차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 정신을 스스로 주체와 전체로서 온전히 철저하게 살았다. 자신의 생명과 정신 속에서 스스로 깨닫고 체험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도산의 삶과 사상은 소박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심오하면서 통합적이다. 인간의 몸과 생명과 정신은 이성보다 훨씬 깊고 통합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간디와 도산의 비교
도산처럼 인간의 주체와 인격을 존중하고 받든 지도자가 없다. 그는 높은 도덕과 인격을 내세웠으나 인간이 스스로 하고 스스로 되기를 바라고 기다렸다. 그는 결코 일방적인 권위와 명령으로 지시하고 이끌지 않았다. 어린 학생에게 큰 절을 하며 일깨우고 가르쳤던 도산은 ‘민이 스스로 하고 스스로 되게 하는’ 민주정신의 모범이었다. 도산의 이런 민주정신이 삼일운동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지도자들이 민중에게 명령하고 앞에서 이끌기보다는 민중의 뒤에 서서 민중이 스스로 일어서도록 호소하고 기다렸던 것이다. 도산은 남을 앞세우는 지도자였다.
간디는 위대한 정치지도자이고 영적 스승이지만 간디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간디는 민중에 대해서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를 가졌다. 간디의 판단과 결정을 민중은 믿고 따랐다. 정치적 판단과 결정을 내릴 때 간디는 측근들이나 민중들과 수평적으로 쌍방향으로 의논하고 결정하지 않았다. 간디와는 대조적으로 도산은 민중을 앞에서 이끌기보다 뒤에서 이끌었다. 그는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동료들을 설득하였다. 도산은 수평적이고 쌍방향적인 민주적인 지도자였다.
간디는 금욕적이고 기술과 산업을 비판하는 반문명주의자였다. 간디는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정화시키려 했으며 욕망과 감정을 억압하고 통제하려고 했다. 그는 비폭력 불살생을 내세우며 정신적 영적 삶의 원리를 내세웠다. 간디가 물질과 몸, 욕망과 감정에 대해서 억압적이고 금욕적인 자세를 취한 것은 인도의 원주민을 강력하고 엄격하게 통제한 아리안문명의 정신과 기질을 반영한다. 인도 아리안 족은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인도 유럽어 족에 속하며 이들의 언어는 매우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수학의 순수한 논리와 원리를 표준으로 물질과 몸, 욕망과 감정을 부정하고 초월하려고 하였다.
도산은 결코 몸과 물질, 욕망과 감정을 억압하고 부정하는 금욕주의자가 아니었다. 도산은 삶을 긍정하고 기술과 산업을 긍정하는 현실적 문명인이었다. 그는 생의 기쁨을 강조하고 ‘주택과 정원의 맛’을 느끼고 욕망과 감정을 존중하고 실현하려고 했다. 도산은 한민족의 통합적이고 생명 친화적인 사상과 정신을 이어받은 것 같다. 인도 유럽어와는 달리 한국어는 분석적이거나 논리적이기 보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교감하는 통합의 언어다.
단군설화에서는 땅 위에 하늘을 열고 하늘과 땅이 서로 교감하고 감응하며 합류한다.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상징하는 짐승인 곰이 고난과 시련을 거쳐 사람이 되고 하늘의 자손과 결혼하여 새 나라의 지도자를 낳는다. 물질과 생명과 정신, 몸, 맘, 얼을 긍정하고 통합하는 천지인합일의 사상이 한민족의 정신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도산이 인간의 덕력과 체력과 지력을 함께 기르려고 한 것도 인간의 몸과 생명과 정신을 통합적으로 긍정적으로 본 것을 나타낸다. 덕력은 하늘의 얼과 뜻에 닿아 있고 체력은 땅의 물질적 신체적 힘을 나타내고 지력은 인간의 맘을 나타낸다. 도산은 높은 인격과 정신을 추구했으면서도 결코 욕망과 감정을 부정하거나 제거하는 엄격한 금욕주의에 이르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존중하며 동료를 앞세우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설득하고 기술과 산업을 중시하고 몸(체력), 맘(지력), 얼(덕력)을 통합적으로 실현하려고 했던 도산이 간디보다 더 현대적이고 현실적이며 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