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독서] "도산은 뭐라 했을까?" (장리욱 저: 도산의 인격과 생애)
제 14 장 (도산은 뭐라했을까?-성자 도산)
장리욱이 “도산은 뭐라 했을까”라는 말은, 도산이라면 이 복잡한 세상 일에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도산의 판단이 깊은 사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14 장에서 장리욱은 도산의 두드러진 성격으로, 1) 진실성, 2) 이지성, 3)
애인성을 손 꼽았다. (p 189-193) 첫번째로, 도산의 진실성은 그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면이다. 도산이 성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었던 진실, 거짓 없는
것에 인생의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도산은 아브라함 링컨과 닮은 점이 많다. 진실성이
그 것이고, 웅변을 잘한 것도 닮았다. 미국이 두 동강날 위기에 처하여, 링컨은 과감히
전쟁을 지휘하였다. 도산도 과감한 점이 있었는 데, 그것은 그가 바로 진실하였기 때문
이다. 도산은 꿀릴 것이 없었던 사람이다. 도산은 누가 뭐래도 떳떳하였다. 돈, 이성, 명예
등에 있어서, 단 한번의 잡음이 없었다. 두번째로, 도산이 사물의 합리성을 강조하는
이지성을 가진 것은,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대한인국민회나 상해임시정부를 처음부터
기초를 세울 때에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독립운동의 방법론에 자기 나름대로 확신을
가진 영웅적인 독립운동가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람이 죽고 사는 독립운동의
극단적인 상황에서, 현실적이고도 과학적인 판단을 하는 도산의 이지성은 큰 빛을
발하였다. 그는 항상 준비를 해 놓고는 뒤로 물러나 아래 자리를 택하였다.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이승만을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세운 것은,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멀리 보았던
이지성을 갖춘 도산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세번째로, 도산의 사람 냄새가
나는 애인성은 감격 그 자체다. 병에 앓아 누운 최남선을 정성을 다하여 치료하여,
최남선은 도산만이 스승이라 하였다. 병에 누운 피천득을 간호하였고, 피천득은 도산을
금강산에 비유하였다. 반신불수가 된 추정 이갑을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미국에 불러
치료할려고 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가식으로 될까? 아니다. 이것이 도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애인성이다. 도산이 성자인 것은, 그의 진정한 인간 사랑이다.
도산의 이 3 가지 특성이, 그가 민족의 영원한 발전을 위해 택한 “교육입국”에 대한
열정과 같이 합해져서, 수많은 동지들이 도산을 따라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고, 교육
분야에 종사하여 두각을 나타내었고, 건국의 지도자들이 되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도산은 그 깊이, 넓이, 높이가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인격이
되었고, 스스로 바다와 같이 겸손하여 모든 높고 낮은 산들의 물을 다 포용하는 가장 큰
사람이 되었다. 좁고, 편협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민족의 성자가 된 것이다.
도산의 또 하나의 특징은, 독립운동에 쏟은 도산의 시간이다. 그는 개인적인
가정생활에 쏟을 수 있었던 시간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쳤다. 또한 그러한 시간들을
계획을 세우는 것, 실천 세부 사항을 세우는 것, 조직을 만들고 성공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 인재를 구하고 양성하는 것들로 채워서, 하루에 주어진 시간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친 셈이었다. 그리고, 도산은 돈, 여자, 재물들을 쫓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24 시간
중 잠을 자는 시간을 빼 놓고는, 일생 전체를 독립운동과 흥사단 운동에 바친 삶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시간을 바쳤기 때문에, 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도산은 이 긴 시간에
더하여, 집중력이 대단했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하여,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였다. 계획을
세우고 또 세웠다. 도산은 선택과 집중을 (choice & focus) 잘한 지도자이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모든 단체나 조직은 방향을 잃기 쉽다. 도산이 조직한 많은 단체들이,
역사에 길이 남는 것은 도산의 집중력 때문이다. 흥사단의 조직을 보면 도산이 얼마나
철저한 준비를 하였는지 알 수가 있다.
성자는, 특히 윤리적으로,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을 높여 부르는 데, 도산이 바로
성자의 반열에 있지 않는가? 도산은 일반 사람이 가지는 금력, 권력, 성욕을 철저히
control 하였다. 도산은 상해임시 정부의 “돈 주머니”로 불렸지만, 돈의 문제로 도산은
흠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금전 문제가 너무도 확실하여 도산이 말하면 모든 동포들이
아끼지 않고 독립운동 자금을 희사하였다. 도산은 권력의 욕심에서 초월하였다. 무슨
조직을 할 때도 앞뒤를 안가리고 최선을 다하여 조직을 하고는 도산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스스로 낮은 자리를 택한 도산이, 지금은 가장 우뚝 서 있다. 도산은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의 명예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대한 독립, 한국 민족이 우선이었다.
도산은 또 여자 문제가 깨끗하였다. 정열적인 사나이 대장부가 어디 유혹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도산은 이성에 대한 욕심을 초월하였다. 이는 도산만이 가질 수 있는 덕목이다.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와는 반대이다. 이성간의 감정을 도산은 민족을 향한 감정으로
승화하라고 접근하는 여성들을 설득하였다. 참으로 보통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산은 윤리적/희생적인 고행의 삶을 살았지만, 탄생한지 140 년이 지나 성자의
반열에 올랐다.
도산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고, 누구의 말을 베끼거나 표절하지 않았다. 모두
스스로 공부하여 대화, 웅변, 글로 나온 독창적인 것들이었다. 또 도산은 “생각 즉
행동”이라는, 언행일치의 진실한 사람이었다. 도산의 단편적인 생각들, 그리고 그에
따르는 행동들이 합하여, 위대한 “도산사상과 철학”을 이루었다. “도산학” 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도산은 사상이나 철학을 전공으로 혹은 공부를 많이 하여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고, 본인이 스스로 옳은 말을 하였고 그 말대로 행동하여 최고의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최고 정상자리도, 본인은 한번도 원한 적이 없었다. 진실로 열심히 일을
하다보니, 도산은 언제나 정상의 자리에 중심의 자리에 있었다. 독립운동 중의 어느
사진을 보아도, 중심에는 항상 도산이 앉아 있다. 그것은 모든 동지들의 양보와 권유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일 것이다. 도산은 스스로 겸손의 자리에 있었으나, 독립운동 당시에,
도산을 중심으로 모든 모임이 이루어진다. 도산은 모든 일에 중심이었고, 중심이 되었던
도산에게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도산의 사상과 철학이 해답이 될 것이다.
2018 년 5 월 30 일,
윤창희 씀